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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러시아의 역사

by 아몬드봄봄 2023. 2. 4.

러시아의 역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현재 동유럽에 거주하는 동슬라브인들의 역사를 말한다. 먼저 기원전 러시아부터 시작해보자.

 

동고트족의 일부 민족들이 게르만족 대이동 시기에 남러시아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7세기 무렵부터 동유럽 평야에서 독립적인 힘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남러시아 구역에는 기원전 10세기부터 동슬라브족이 머물러 살기 전 각각의 민족들이 정체성을 나타냈다. 기원전 7세기쯤에는 사르마티아인이, 그리고 기원전 10세기쯤부터 킴메르인과 스키타이인이 각각 남러시아에 유입되었다.

 

초기 슬라브족의 역사

동슬라브족과 같은 슬라브인들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튀르크, 게르만 등 빈번한 외부 세력으로부터 고통받다가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잦은 구속에 연결된 역사이다. 따라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슬라브 민족의 국가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형성되어 나타난다. 슬라브족은 일반적으로는 슬라브 문화를 기본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서남북의 여러 슬라브 민족 중 특히 동쪽의 슬라브 민족들은 고대 때부터 중앙아시아 출신의 투르크족들의 지배를 받았고 따라서 튀르크 문화가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동슬라브인들은 5세기경부터 투르크 민족의 나라인 사바르 카간국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이후에는 아바르 카간국에 복종 당하여 나중에는 러시아를 포함한 동슬라브족 초기 나라인 루스 카간국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하자르 카간국에 정복되었다. 3세기부터 10세기까지 달하는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러시아 민족 정복에 의한 투르크화의 영향력 때문에 동슬라브인, 그들의 문화는 서부 유럽권의 그것과는 다른 조금은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게다가 게르만이라는 외부 세력 압박에 빈번하게 고통받았으나 이를 끝내 막지 못하고 결국 지배당해 그들이 국토 내에서 농노화되었다. 하자르 카간국의 영향을 받아 동슬라브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8세기에서 9세기에 '루스 카간국'이라는 고대 투르크어인 카간을 일컫는 동슬라브족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였다. 이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장악하고 있었던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사람들이 카간을 빙자하였으나 이 지배 속에서 동슬라브 사람들도 완전히 융화되고 예속되어 동슬라브의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이후 동슬라브 사람들이 카간을 자칭하게 되었다. 동슬라브 주민들은 중앙아시아의 동유럽 정벌을 거두어들이고 그 지휘 아래에서 활동하였다.

 

슬라브어파의 동슬라브어를 사용하며 숲이 많은 삼림대 주변에서 검소한 농경의 삶을 살고 있던 동슬라브족의 서쪽 지역에는 발트어파에 속하는 발트족 동쪽 지역이나 북쪽 지역에는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한 민족들이 이 민족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얼마 있다가, 이쪽 지역의 동슬라브 사람들은 튀르크인들에 지배받고 난 뒤 튀르크에 융화되었으며 볼가강의 하류에서 넘어온 튀르크족의 러시아 지배에 의해 하자르 한국에 정벌 당했다. 남쪽 지역 흑해 북해안의 스텝은 유목민이 된 동슬라브인들이 지냈다. 그 후, 러시아 사람들은 게르만족과 비잔틴 국가들의 간섭 아래에서 고통받았고 동슬라브 민족(지금의 러시아인)들은 지배당한 뒤 농민으로서 살아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벨라루스 또한 우크라이나 북부 지방에서는 게르만족의 많은 수가 한꺼번에 대이동을 하게 됨에 따라 서쪽으로 이동 후, 슬라브족들이 넘어와서 동슬라브족이라는 슬라브 사람들이 지내고 있었다. 침략, 해적 수작 외에 북해와 발트해 무역에 몸담고 있던 바랑기아인은 상대적으로 높은 항해 기술을 가지고 흑해로 넘어와서 재정적으로 부유한 남쪽 지방의 동로마 제국과의 무역에도 앞장섰으며 게다가 이 시기에 이슬람 제국의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이 두 개의 무역 노선을 통해 동쪽 지역의 슬라브 사람들은 바랑기아인과 튀르크인의 영향 속에서 그들만의 국가를 구성해 나갔다. 서유럽에서 프랑크 왕국 등 게르만족의 왕국이 만들어졌을 시기에. 북서 지방의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바랑기아인들의 생활하기 시작했다.

 

중세 러시아로 들어가 보자.

'루스 카간국'의 마지막 카간인 동시에 류리크 왕조의 시조가 되는 '류리크'는 862년 지금의 노브고로드 지역에 뿌리내렸다. 이 시대부터 올레그 베시가 키예프 루스를 구성한 882년까지의 루스인들의 존재를 노브고로드 루스라고 칭하게 된다. 루스인들은 10세기 말까지 투르크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이 결과 류리크 왕조의 시조인 류리크는 훌륭한 왕, 동시에 위대한 카간으로 불렸지만, 그가 노브고로드에 뿌리를 내린 후에는 피지배 계층 동슬라브족에 천천히 융화되었고 '카간'이라는 호칭 대신에 '대공'이라는 호칭으로 거의 대체되었다. 초기의 기록에 따르면 크리비치인들, 메레인, 추드인, 벱스인, 동슬라브인이 루스인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직접 다스릴 계획을 했으나 이후 부족 간의 다툼으로 인해, 이로 인한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루스인들을 또다시 유입시켜 862년에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882년 벨라루스,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초기 모습인 키예프 루스는 류리크의 후계자인 올레그 베시가 키예프를 완전히 지배하고 난 뒤에 루스인들의 본 고지를 노브고로드에서 키예프로 이동함으로써 완성되었다. 9세기경 키예프 루스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비잔틴 문화와 동방 정교회를 받아들였으며 10~11세기 무렵에는 유럽 국가 중에서 제일 강력한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이러한 세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키예프 루스의 북동쪽 지역이 오늘날 유럽의 러시아 지역이다. 13세기 키예프 루스는 류리크 왕실의 상속 분할로 인해 몽골로부터의 침략과 내부 분열로 인해 몰락하였다. 키예프 루스가 몰락한 후에 모스크바 공국, 노브고로드 공화국, 블라디미르 대공국, 트베리 공국, 스몰렌스크 공국, 프스코프 공화국, 랴잔 공국 등과 같은 군소 루스 공국들이 키예프 루스의 근본을 이어 나갔으며 또한 타타르에 얽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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