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의 종교에 대해서 알아보자
마야인들은 죽은 조상들이 현재 자신들의 상황을 초현실적인 힘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고 예법에 따라 치르는 의식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 경배했다. 메소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들과 비슷하게 마야인들도 저 먼 곳에 그들 자신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초현실 세계의 존재와 그 존재들을 상징적인 제물들과 예식을 행하여 만족시켜주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두 사이 간의 중재를 원한 가장 최초의 형태는 샤먼(shaman)이었다. 이러한 마야의 이식에는 사제들이 대개의 경우 '환각'을 사용하여 그들의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기서 사제들의 환각은 보다 강한 환각 기운을 내는 '수련'을 많이 흡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야 문명 사회가 점차 발달하면서 권력층, 지배층들은 그들의 신성하고 종교적인 예식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선고전기 후기에는 왕권신수설과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왕은 '쿠홀 아저우'라고 불렸으며 세속적인 힘과 종교적인 힘 양쪽을 강하게 휘어잡고 있었다. 동양과 비슷하게 마야 문명에도 사방색이 존재했으며 동쪽은 붉은색, 서쪽은 검은색, 남쪽은 황색, 북쪽은 흰색이었다. 대부분의 신들은 이 방위들과 색깔이 연관되어 있었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대로 마야인들의 우주관은 당시 매우 구체적이고 체계화되어있었다. 그들의 우주관에서 천상계에는 총 열세 개의 층이 나뉘었으며 지하에는 아홉개의 층이 있었고 지상계는 천상계와 지하, 그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각각의 층들은 정확한 방위들로 또 나뉘었다.
마야는 부계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거의 최고 숭배 대상이 되는 존재는 남자 조상들이었고 이 중에 가장 영향력이 강한 자들은 개인 사원까지 갖추고 있었다. 마야의 사제들은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인간들에게 복을 선사해줄 의무가 있었고 마야의 신들은 세계 전체를 돌보았다. 지배층의 힘이 강해지고 마야의 사회가 점차 발전하면서 이 각각의 사원들은 조상들의 무덤이 자리한 웅장한 피라미드로 발달했다. 신, 즉 종교에 대한 믿음은 음식에서부터 공공 행사, 무역, 정치 등 마야인들 삶 전반적인 곳에 걸쳐 스며들었다. 마야 고전기 초기 때 비석에는 매우 복잡한 종교의식들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었고 여기에는 신화와 역사, 천문 관측, 달력 연구, 공부 등이 포함되었다. 사제들이 주도한 종교적 행사에는 제물 바치기, 잔인한 사형식, 축제, 춤, 음악 등이 있었다.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고전기 시대에는 도시의 왕이 가장 높은 사제직을 맡았고 마야인들은 이 사제가 인간과 신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더해 평민들 사이에서는 샤머니즘도 여전히 유행했다. 후고전기에는 종교적으로 두드러지는 점이 서로 달라졌는데, 이때는 대부분이 그림들과 신상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때가 전보다 많아졌다. 많은 마야인은 죽은 가족들의 시체를 그에 알맞은 부장품들과 같이 집 바닥 아래에 묻었다. 여기서 부장품이란 장사를 지낼 때, 시체와 함께 묻는 물건을 통틀어 말한다. 마야인들은 이런 식으로 해야 죽은 가족들이 살아있는 그들을 고스란히 잘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고학자들은 주로 기록, 비석문들, 사원, 피라미드 속 봉헌물, 스페인 정복자들이 적어놓은 마야 지방의 탐험 기록 등을 해석하여 고대 의식에 대한 정보를 되도록 많이 얻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현지 주민들의 남아있는 풍속과 신앙을 결속하여 그 시대의 제사 의례 의식을 추측해내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그때 당시 종교적 의식을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이용하여 재현해보려 애쓰고 있다. 제일 많이 쓰이는 기술은 현존해 있는 물리적 근거들을 이용하여 의식들을 재현하는 것인데 물론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앞서 잠깐 말했던 인신 공양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보통 전쟁에서 잡혀 온 상대방 나라의 고귀한 직위의 계층 또는 왕족 포로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또 반대로 하찮고 낮은 계급의 포로들은 제물로 바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은 노예로 쓰였다. 마야인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제물을 그들 손으로 직접 신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더할 것 없이 그들을 기쁘고 흡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이에 더해 마야인들은 사람의 피가 마야의 신들에게 바치는 대단히 값진 제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살아있는 인간을 그대로 죽여 그 피를 신들에게 공양하는 행위는 마야의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인신 공양 의식은 고전기 마야 예술 작품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대개 포로들이 폭행당하거나 화상을 당하는 등 잔인하게 고문을 당하는 것들도 흔하게 발견되었다. 후고전기 시대의 인신 공양 방식 중에 제일 흔했던 방법은 인간의 흉부 부분을 갈라 심장을 꺼내는 식이었다. 이 방식은 멕시코 계곡의 아스텍 제국으로부터 문화가 전해져 왔으며, 대개 신전의 마당이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실행되었다. 또 몇몇 의식에는 이미 제물로 바쳐진 시신의 피부를 벗겨 사제 중 한명이 그 가죽을 덮고 앞에서 춤을 추는 행위를 하며 신들을 숭배했다. 마야인들은 이런 의식을 통하여 망자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고학자들은 적어도 고전기 이후부터 이런 인신 공양 의식이 치러졌다고 추측한다. 새 왕의 즉위식과 같은 중요한 의식들이나 사원을 신에게 바치는 행사에는 주로 인신 공양이 꼭 행해졌다. 특히 적의 왕을 죽여 공양하는 것이 가치가 제일 높았을 거라고 예측된다. 포로로 잡힌 타국의 왕을 죽일 때는 아무렇게나 목을 베지 않았고 포로에게 신과 같은 의복을 입히고 나서 목을 베었다고 한다. 이는 그 시대 죽음의 신이 옥수수신을 죽였다고 믿었던 그때의 마야 신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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