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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아메리카 역사의 시작과 마야 문명

by 아몬드봄봄 2023. 1. 19.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자

먼저 아메리카(America)라는 명칭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탈리아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륙 발견 후에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새로운 대륙을 두 차례나 항해했는데 그는 이 신대륙을 '신세계'라고 불렀다. 이후에 회사는 이 신대륙의 이름을 콜럼버스의 이름으로 따 짓기 위해 잠시 이름을 없애기도 하였으나 이미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널리 퍼진 이후라 고치지 못했고 이렇게 신대륙의 명칭은 결국 지금 부르는 '아메리카'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신대륙의 명칭이 최초로 지도에 등장한 것은 1507년으로 독일인 지도 제작자 Waldseemuller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라고 칭하였다. 현재 강대국인 미국이 자리 잡고 있는 대륙으로 많이 알고 있는 아메리카는 유럽 국가들에 의해 식민지화되기 전 오랜 기간 동안 원주민(Native American)의 대륙이었던 곳이다. 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주장은 여러 계통으로 나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동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베링 육교를 건너 지금의 알래스카 대륙으로 이동한 뒤 북쪽 아메리카 전체에 흩어져 거주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역시 몽골계 집단이 태평양을 항해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남태평양 대륙의 아시아계 종족들이 바다를 넘어 아메리카 남부에 도착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겉으로는 유사해 가끔 혼동을 부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에 동북 아시아계 유전자 특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현재는 Y염색체 유전자 분석,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시베리아와 베링 해협을 거쳐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3대 고대 문명으로 나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신대륙에 왔던 유럽인들은 잉카, 마야, 이로쿼이, 모체, 올멕, 아스테카, 카호키아, 톨텍 같은 문명에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남부와 북부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문명의 잔재들은 기원전 만여년이 지난 물건들이라고 한다. 그들만의 고유한 문명은 유럽인들이 그 원주민들의 대륙을 발견해내면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더 이상 문명의 발달은 볼 수가 없었다. 15세기쯤에 멕시코에서 옥수수가 들어와 미시시피강 근처에서 재배되기 시작하고 잉카인들에 의한 감자 채취, 또 아스테카인들에 의한 초콜릿 채취 등 여러 특산물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야문명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야 문명, 영어로 Maya civilization.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동남부, 온두라스 서부, 엘살바도르 북부, 과테말라, 벨리즈, 유카탄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잘 나갔던 메소아메리카 문명이다. 마야라는 단어 자체는 당시 가까운 지역 전반에 걸쳐 거주하고 있던 집단들을 통칭하는 단어이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동일한 민족이나 한 국가의 존재로 여기지 않았으므로 자신들 스스로 마야인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발달한 언어 체계와 이론, 고도의 문명을 가졌으며 상당히 높은 수준의 건축, 예술, 달력, 수학, 천문학 기술 등을 가지고 있었다. 마야 선고전기는 기원전 약 이천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때 최초의 농업과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또 마야 선고전기는 기원전 이천년경부터 기원후 이백오십년까지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최초로 단체 생활을 꾸려가며 도시들과 국가가 수립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상형문자들이 형성되고 쓰이기 시작했다. 선고전기 후기로 도달했을 땐 과테말라, 페텐 분지 같은 지방들에서 대다수의 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기원후 이백오십년부터는 마야 고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그 유명한 마야 달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신전들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해 마야인들의 주요 작물인 옥수수, 콩, 고추도 이맘때쯤 재배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도시는 기원전 칠백오십년쯤에 설립되기 시작했고 기원전 오백년쯤이 되자 마야의 도시들은 섬세하고 세밀하게 꾸며진 석비들로 채워진 거대한 사원들이 즐비한 도시로 가득 차게 된다. 이 시기쯤에는 많은 도시와 국가들이 복작거리는 교역로로 얽힌 채 서로 연결되었으며, 마야 저지대에 위치한 카라크물, 티칼 이 두 곳이 주요 도시였다. 9세기경이 되자 마야의 전통적인 도시들이 전부 붕괴하기 시작했으며 이곳저곳에서 내부 전쟁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이곳 주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대륙 북쪽으로 옮겨가는 등 내부 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며 후고전기 때는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이 마야 도시국가들에 거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 또한 치첸이트사가 마야의 주요한 도시로 부상했다. 16세기가 되면서 지금의 스페인이 메소아메리카 지역을 무력으로 합병하였으며, 1697년 스페인이 마야의 마지막 도시 노즈페텐을 함락시킴에 따라 마야의 오랜 전통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마야 도시들의 왕들은 자신들의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중재인으로 자칭했으며 아버지 쪽의 혈연 계통으로 이어지는 사회였기에 왕위는 대부분 장남에게 물려주었다. 대부분의 왕들은 어느 정도의 전쟁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꼭 갖추고 있어야 했다. 마야 고전기 통치의 핵심은 바로 신정일치다. 여기서 신정일치란 신의 대변자인 사제가 지배권을 가지고 종교적 원리에 의하여 통치하는 정치 형태이다. 마야 문명은 우리가 알다시피 고도로 발전된 예술 이론과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도자기, 흑요석, 돌, 옥돌을 사용해 훌륭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창조해냈다. 마야의 지도층과 권력층은 상당히 폐쇄적인 구조를 나타내었으나 도시에 따라 달랐다. 고전기 후기로 갈수록 귀족정이 증가하면서 군주정은 감소하였다. 이 때문에 왕권은 점차 약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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