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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

by 아몬드봄봄 2023. 1. 13.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역사를 반드시 지고 살아가야 한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화와 흥망의 단계, 지난 시대에 남긴 기록물,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등을 가리킨다. 또 인간이 밟아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또한 역사는 시간이 흘러감으로써 어떤 사람이 겪은 일에서 중요한 일 중 후대에 쉽게 잊히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의미하며 명예와는 미래에서 잊히지 않고 이어 전해진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학은 고고학, 사회학 등의 주변 학문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역사라는 개념은 또한 포괄된 의미에서 사건이나 사물의 자취를 지칭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하여 많은 시대적 자료를 연구한다. 이 사료들은 1차 자료와 2차 자료로 구분되는데, 1차 자료는 어떤 사건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문서, 기록 등이다.

역사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과 서정적 표현, 주관적 기술의 세 측면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레오폴트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운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만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해 에드워드 헬릿 카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역사 연구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하고 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객관적으로 의미 짓기도 한다.

 

영어의 "히스토리"(history)는 고대 그리스 말인 "히스토리와"(ἱστορία)에서 파생되어 "알다", "보다"를 뜻하는 Wei-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뿌리는 영어의 wit, wise, wisdom, vision, idea, 산스크리트어의 베다(EDA), 슬라브어의 vide ti, vedati 등에 현존해있다.

(WI-tor- Wei 앞에 붙은 별표는 이것이 확정된 정설이 아닌 가설에 근거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 낱말은 현자(賢者), 증언인, 혹은 판관을 뜻하는 ἵστωρ(hístōr)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호메로스의 시, 헤라클레이토스, 아테네 젊은이들의 선서, 보이오티아의 비문(법적인 의미로 "판관", "증인" 혹은 비슷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있다. "조사하다"는 뜻의 historeîn 이오니아 그리스어의 파생어로서, 고전기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퍼져서 후대에는 헬레니즘 문명 전체로 퍼져나갔다. 

고대 그리스어 ἱστορία(historia)는 "조사와 탐색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는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Περί Τά Ζωα Ιστορία(Peri Ta Zoa Istória, 라틴어 역어: Historia Animalium)에서 사용하였다.

 

1390년 영어에도 이 단어가 "사건들의 연관,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나타난다. 중세 영어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story"를 뜻했다. 그러다가 15세기 말에 이르면 "과거 사건의 기록"으로 의미가 좁아진다. 독일어, 프랑스어, 다른 게르만어나 로망스어에서도 "역사(history)"와 "이야기(story)"를 의미하는데 같은 낱말이 쓰인다. 형용사 "historical"은 1661년에, 'historic'은 1669년에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역사 연구자"를 뜻하는 'historian'은 1531년에 등장한다. 모든 유럽 언어에서 역사를 뜻하는 명사들은 용례상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과거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둘 다 의미하고 있다. 영어에서 후자의 의미로는 대문자를 써서 "History"라고 쓰거나, "역사서술(historiography)"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이 말의 맥락은 16세기 말 프렌시스 배이컨이 "자연사"에 대해 쓸 때도 여전히 등장한다. 그는 historia를 "시공간에 따른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으로, 기억에 따른 지식이라는 의미로 썼다. (그런데 반면 과학은 추론, 시는 환상에 따른 것이다)

 

이집트 문화는 나일 강변에 세워졌다. 나일 강물은 매년 넘쳤고, 그 강둑에 흙이 쌓여만갔다. 비옥한 흙은 농부들이 도시 사람들이 먹기에 꽤 충분한 곡식을 기를 수 있게 하였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문명화를 돕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들 중에는 지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은 일들이 많다. 왜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위해서 역사학자들은 자주 지리학의 도움을 받는다. 날씨의 성향, 물의 공급, 그리고 지구 지표현의 생명체 등은 전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왜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성공적인 문명화를 성공화시켰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집트의 지리학을 참고해야 한다. 

 

*한국의 역사

*수메르 문명

*아스텍 문명

*인더스 문명

*잉카 문명

*요하문명

*고대 그리스 문명

*고대 로마 문명

*페니키아

*페르시아 제국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황하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히타이트 문명

*카르타고

*폴리네시아 문명

 

<대륙별 역사>

아프리카 / 아메리카 / 아시아 / 오세아니아 / 남극/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한가지의 중요한 변환점이 발생했으며, 그 당시 인문과학은 전통적인 분야로부터 문학 및 역사와 같은 분야로의 전환에 상응하는, 실용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적인 과목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20세기에는, 민주사회에서 평등원칙에 더 맞는 용어로써, 인문과학을 재정의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의해 다시 논의되었다. 서양에서 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시민들에 대한 넓은 범위의 교육 기준으로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로마 시대 동안에, 4과(음악,기하,산술,천문)와 함께, 3학(문법,수사 그리고 논리)을 포함하여, 7가지의 자유 인문 학문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목들은 인문학에서 기술들 또는 "행위의 방법들"로써 강조되어, 중세 교육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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