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에 이어 잉카 문명에 대해 알아보자.
잉카 제국에는 여러 가지의 건국 신화가 있다. 이 중의 한 가지, 인티라는 태양의 신은 깊은 호수 띠띠까까에서 망코 카팍 와 마마 오콜로를 만든다. 그다음 그들에게 하나의 도시를 새롭게 건설할 것을 지시한다. 지하 동굴로 쿠스코까지 여행한 망코와 오콜로는 그 자리에 이들의 왕국을 최초로 세우게 되었다. 이 이야기 외에 또 다른 건국 신화가 있다. 잉카의 창조의 신, 티키 비라코차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총 여덟 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그의 네명의 형제들(아야르 망코, 아야르 오코, 아야르 카치, 아야르 아이카)과 나머지 네명의 자매들은 그들이 있었던 동굴에서 빠져나와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근처에 뿌리를 내려 인간들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나 오콜로와 아야르 망코는 이곳과 다른 곳에 도시를 세우길 원하여 떠났다. 여행 중 오콜라와 망코 사이에 신치 로카가 탄생한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쿠스코로 인도하였으며 그들은 그곳에 또 다른 새로운 도시를 세우게 되고 신치 로카의 자손인 망코 카팍이 이곳의 지도자가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설화로만 이어지다가 스페인 식민지 때가 돼서야 기록되었다. 그리고 일부 연구자들은 잉카 문명의 사람들이 이런 신화를 매듭 문자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여기서 매듭 문자란, 자가 없던 시대에 새끼줄이나 띠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문자이다. 고대 중국은 포함해서 잉카 제국, 아프리카, 티베트 등에서 사용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잔혹한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대부분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이 매듭 문자를 해독할 수 없다.
안데스 문명은 대략 기원전 1000년경 지금의 '푸나'로 알려진 페루 지역의 고원지대에서 생겨났다. 초반에는 잉카족들이 유목민이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안데스 문명의 어원은 바로 안데스산맥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이 문명이 성장했던 지형적인 자리를 예측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안데스 학자들은 잉카제국 이전에 띠띠까까 호 근처에서 약 500년 동안 종교의식과 행정 중심 도시로 많이 번성했던 띠와나꾸라는 문명을 발견했다. 이 지역의 지리학적 위치는 잉카 문명의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폐활량은 다른 지역의 종족들과 비교했을 때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들의 폐활량은 매우 뛰어났고 다른 종족들보다 혈액도 2리터 이상 많았다. 게다가 그들은 심장박동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고 혈액 속의 산소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 또한 다른 종족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잉카족 여자의 평균 키는 약 145cm였으며 남자 평균 키는 약 157cm였다. 이 위치에 살던 앞 시대 최고 지도자에 관한 추측성 담화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단지 전설 같은 이야기일 뿐, 기록된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잉카 제국이 이 지역의 첫 문명 같지만 잉카는 확실히 다른 문명의 결과이다. 바로 이전에 발달했던 수많은 다양한 문화에서 벌써 잉카문화에 대등한 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던 적지 않은 문화를 찾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잉카 시대의 유물들은 실제로 잉카 문명 이전에 생겨난 경우가 많다. 몇몇 고고학자들은 해발 5,300m 정도 수준의 알티플라노라는 온대 지방에서 안데스 문명의 발자취를 발견하였다. 스페인 정복자들보다 잉카 족들의 신체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신장이 작았던 것으로 추측되나, 이들은 확실히 고산지대에서 잘 버틸 수 있는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잉카 문명이 계속 클 수 있었던 이유는 고산지대의 날씨 조건 때문이다. 고산 지대인 잉카 제국의 자원은 비큐나, 라마, 알파카 등이 있었다. 또한 잉카는 중앙 벌판에 위치한 쿠스코라는 곳에서 시작해 연해 방향으로 그 권력을 키워나갔다. 그들의 고급 관리 조직은 총 열 한 개의 왕실 계급의 관리인들만으로 짜여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태양신을 떠받들며 지냈고 여왕과의 근친결혼을 통해 이들의 권력을 이어 나갔다. 잉카의 첫 번째 지도자는 망코 카팍이다. 이후 일곱 번째 왕조까지 각기 다른 통치 기간에 관한 세부적인 근거와 사료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망코 카팍이 통치했던 기간은 1250년부터 1438년까지 대략 188년인 것으로 파악된다.
잉카 제국은 모든 사람이 태양신을 떠받들 것을 강제로 요구하는 삼엄하고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파차쿠티는 '케추아어'를 공용어로 정하였고 공격받아 무너진 지역의 사람들이 태양신 섬기기를 권하였다. 논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페루 서쪽에 위치한 해조류의 배설물이 쌓이고 굳어 만들어진 퇴비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생산성 증대를 위해 개관, 계단식 농업의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함락시킨 상대편 국가의 노동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잉카 제국의 아홉번째 지도자 '파차쿠티 잉카 유팡키'가 1445년 띠띠까까 지역을 정벌하였다. 파차쿠티는 잉카 문명과 정벌 지역의 문명을 동화시켜 하나의 문명으로 새롭게 성장시켰다. 치무 문명이 좋은 예 중의 하나이다. 잉카 제국의 관리들은 함락된 지방 곳곳에 파견되었다. 함락된 지역 공직자의 아들을 인질로 잡아 쿠스코로 끌고 가 각 지방 공직자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파차쿠티는 왕실의 엘리트들을 훈련하고 가르쳤다. 그는 끝은 돌 이나 청동으로 장식된 나무막대, 청동 전투 도끼, 창, 투석기, 던지는 창, 가죽으로 씌운 나무 방패, 화살, 활, 면이나 등나무류로 만든 헬멧, 누빈 갑옷으로 그의 군인들을 무장시켰다.
'역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의 역사2 (근대) (0) | 2023.02.15 |
---|---|
러시아의 역사 (0) | 2023.02.04 |
마야의 종교 이야기 (0) | 2023.01.26 |
마야 문명 건축 그리고 천문학 (0) | 2023.01.25 |
마야 문명 네번째 이야기 (0) | 2023.01.23 |
댓글